서울 한복판 좁은 골목 어귀에 자리한 고시원. 수십 개의 작은 방마다 각자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살아갑니다. 그들의 삶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기록에 남지 않지만 누군가는 매일 그 곁을 지키며 묵묵히 공간을 관리합니다. 바로 고시원 관리자입니다.
이 글에서는 고시원 관리자의 하루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이면—특히 무연고자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고시원이라는 주거 공간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고시원의 기원과 현황: 왜 아직도 필요한 공간인가?
고시원은 1970~80년대 고시생을 위한 최소 비용 주거공간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공시생보다는 저소득 근로자, 일용직 노동자, 고령 1인 가구의 거처로 바뀌었습니다. 2023년 기준 서울시 등록 고시원 수는 약 6,300여 개, 거주 인구는 12만 명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월 임대료는 20만~40만 원 선으로, 보증금이 필요 없고 계약이 간편하다는 점에서 긴급 주거지로 기능합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화재 안전시설과 밀집 구조로 인해 여전히 ‘비주거형 주택’으로 분류됩니다.
고시원 관리자의 일과: 단순 관리 이상의 정서 노동
고시원 관리자는 하루 종일 건물 내외를 점검하고, 퇴실자 방을 청소하고, 세입자 민원에 대응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들은 시설관리자이자, 사실상 입주민들의 일상과 감정까지 마주하는 ‘현장 상담자’ 역할도 수행합니다.
아침엔 복도 청소와 공용구역 점검, 오후엔 택배 정리와 신규 입주 응대, 야간에는 소음·흡연 민원 대응까지 전방위 업무를 맡습니다. 특히 최근 고령 입주자가 늘면서 건강 이상, 고독사 관련 이슈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고시원 관리자 A씨의 증언:
“세입자 중에는 말수가 거의 없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연락이 닿지 않아 방 문을 열어보면, 이미 고인이 된 경우도 있죠. 마지막엔 다들 외롭습니다.”
무연고자와의 마지막 인연: 기록되지 않는 죽음
고시원에서 고독사로 발견되는 입주자 상당수는 무연고자입니다. 이들은 가족이 없거나, 연락을 끊고 살아온 이들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무연고 사망자는 3,378명으로, 그중 절반 이상이 고시원 등 소형주거에서 발생했습니다.
관리자는 경찰·구청·장례기관과 협조하여 사후 처리를 진행합니다. 유품을 정리하고, 신분증을 확보해 행정 절차를 돕고, 때론 장례식장까지 동행하기도 합니다. 법적으로 가족이 없는 경우, 지자체의 공영 장례 절차에 따라 처리됩니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고인이 마지막에 남긴 메모나 편지를 정리할 때입니다. 낡은 수첩, 택배 상자 한쪽, 심지어는 컵라면 뚜껑에 적힌 글귀 하나가 그 사람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기도 합니다.
고시원 거주자의 특징과 변화: 젊은 1인 가구의 증가
과거 고시원은 50대 이상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20~30대 젊은층의 입주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취업 준비생, 프리랜서, 배달노동자, 이직자 등이 고정 수입 없이 당장 거처가 필요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2021년 국토교통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시원 입주자 중 34.8%가 20~30대였으며, 여성 비율도 25% 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주거 사다리 붕괴’와 맞물린 현상으로, 고시원이 최후의 주거 선택지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고시원 관리자의 감정노동: 보이지 않는 심리적 부담
고시원 관리자는 입주민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언제든 대응해야 하는 ‘준상시 대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소음, 냄새, 취사 관련 분쟁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며, 때로는 폭언이나 위협 상황도 감내해야 합니다.
또한 고독사 발견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한 지역사회복지센터 관계자는 “고시원 관리자 대상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점에서 고시원 관리자 역시 ‘감정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의 공백: 고시원 운영 현실의 그림자
현행 법상 고시원은 ‘공중위생관리법’과 ‘소방시설법’에 따라 운영되지만, 명확한 주택법 적용 대상은 아닙니다. 이에 따라 최소 면적, 주거권 보호, 세입자 권리 보장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2023년 서울시의 ‘비주택 거주자 전수조사’ 결과, 고시원 거주자의 43.2%가 “집이지만 집같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구조적 개편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최근 개선 방향:
- 소방청: 자동화재감지기, 피난안내도 설치 의무화
- 국토부: 주거약자 위한 공공임대 전환 추진
- 서울시: 고시원 리모델링 지원사업 확대
결론: ‘좁은 방’ 너머의 사회적 의미를 다시 보다
고시원은 단지 좁은 방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한 사연과 취약한 삶의 연결망이 만들어낸 한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그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고시원 관리자야말로, 이 시대의 무연고자 문제, 주거권 현실, 감정노동의 교차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목격자입니다.
앞으로 고시원을 단순한 임대공간이 아닌, 복지와 정책, 인간관계가 작동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그 속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관심과 제도적 보호가 필요합니다.